[침묵의 미술관] 분사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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불 타는 냄새. 매케한 연기에 탁한 공기. 숨쉬기가 어렵다.

물에 적신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아도 숨 쉬는 건 여전히 어렵다. 숨을 쉴 때마다 폐가 망가지는 것 같다. 아무리 몸을 웅크려도 자세를 낮춰도 뜨겁고 힘들다. 점점 정신을 붙잡기가 힘들어지고 있다. 

안돼. 버텨야 해. 여기서 죽을 수 없다.

주변을 둘러봤지만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다. 문을 부술만한 도구도 내 숨을 위한 것도 없다. 주변에서 혹시 몰라 사두라고 했을 때 샀어야 했는데...


살려줘... 살려줘... 뜨거워, 뜨겁다고!

왜 갑자기 아파트에서 불이 나는 거야. 소방차는 언제 오는거야! 이미 신고한지 10분이나 지났다고!


이미 핸드폰은 저멀리에서 뒹굴고 있다. 이미 제 수명을 다한 핸드폰은 소방서에 신고를 한 후 제 몫을 다했다. 충천을 하지 않은 내 탓이다.


문 손잡이 온도를 손등으로 확인했다. 


아 뜨거!


뜨겁다. 엄청나게 뜨겁다. 이 문을 열면 안된다는 건 무의식으로도, 의식으로도 알고 있다.

하지만 이 문을 열어도 열지 않아도 죽는 건 똑같은데!

이대로 난 죽는 건가? 내가 왜?!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! 내가 한 건... 아무것도 없는데!

억울했다. 내가 과거에 무슨 짓을 저질렀길래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하는지.


내가 왜...?


살려줘, 살려 달라고. 죽고 싶지 않아.




스토리텔러 : 김현경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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